1.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
상황이 인간의 본성을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루시퍼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루시퍼는 빛을 내는 자 혹은 샛별이라는 의미로 신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던 천사였지만 오만으로 하나님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천상에서 추방되어 사탄이 된 존재입니다. 또는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한 자가 바로 루시퍼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루시퍼는 훌륭한 인격을 가진 존재였지만 동시에 추악한 모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인간에게도 반드시 악한 모습이 어딘가에는 숨어 있다는 것이다.
헤르 마누스의 성장 소설 데미안에서 아 브라 삭스라는 신의 이름이 나옵니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 브라 삭스다.” 아 브라 삭스는 영주 주의파 신으로 머리는 수탁이고 몸은 인간, 다리는 뱀의 모습으로 선과 악을 한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과 필립 짐바르도는 인간이 선한 모습으로 행동하느냐 악한 모습으로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을 죄수와 간수로 나누어 역할 분담을 시켰더니 시간이 갈수록 간수는 포악해지고 가학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완장을 차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즉 선량한 사람이 악마로 변하는 것은 본연의 인간성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주장합니다. 유대인 600만 명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나치인들 모두가 원래부터 악한 사람들이었을 리는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대적이고 구체적인 동물보호법을 만든 사람이 히틀러였다는 사실입니다. 게슈타포를 창설하는 등 악명이 높은 헤르만 괴링은 1933년 라디오에 나와 “동물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실험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신중하고 묵묵히 생각했다. 죽어가는 동물을 지속적으로 대우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스테니 밀그램의 가설처럼 평범했던 보통 사람들이 특수한 상황에서 악마로 변했던 것입니다. 악의 상황 이론을 쓴 리 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개인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그의 고정된 도덕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 하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2. 결정 장애(Indecisiveness)
결정장애라는 용어는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가 쓴 결정장애 세대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198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젊은 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들에게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아마도”입니다. 이 세대들은 어떤 물음에도 분명한 대답을 잘하지 못합니다. “글쎄”,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와 같은 애매모호한 말로 대답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도 못하고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합니다. 기성세대는 이들에 대해 나약하다, 우유부단하다,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지만 예게스는 개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급격한 사회 변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가 초고속으로 디지털화되면서 선택의 범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이 그만큼 더 어려워졌습니다. 선택의 옵션이 많으면 오히려 결정의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전 세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온라인 매체를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니콜라 스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무능해진다면서 그 이후로 너무 많은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어 그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도외시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소위 원리를 깨닫는 데 필요한 학습 기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편리함 뒤에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 시대 그것이 아마도에 해당하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결정 장애의 핵심 감정은 불안입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다가오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곧 결정에 대한 두려움은 결과에 대한 책임의 두려움입니다.
3. 익명 효과(Anonymous Effect)
이름이 없는 경우를 익명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다릅니다. 조선조 세종은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고려 분청자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자 전국에서 조잡한 가짜 분청자기들이 등장하여 물을 흐리고 있었습니다. 보고를 받은 세종은 분청자기를 만드는 사람의 이름을 자기 아래에 새기도록 명했습니다. 그러자 시장의 질서가 바로 잡혔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상품이니 엉터리로 만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요즘으로 말하면 브랜드입니다. 이름의 위력입니다. 대장장이를 영어로는 스미스로 씁니다. 기량이 걸출했던 한 대장장이의 스미스라는 이름이 한 분야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이름이 없는 익명의 말과 행동은 양날의 칼입니다. 선의로 사용하면 한없이 귀하지만 악의적으로 사용하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연말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뉴스 중 하나가 익명의 기부자들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선뜻 거금을 내놓는 사람들입니다. 익명을 가장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천사들입니다. 이렇듯 익명은 선행에 사용되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익명의 다른 측면은 나를 감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말과 행위이기에 무의식적인 욕망과 폭력성을 동반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세상에 법이 없고 스포츠의 규칙이 없다고 할 때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인터넷은 익명의 바다입니다. 이름을 숨기고 마음껏 검색할 수 있는 비밀의 바다인 것입니다. 온라인 카페를 검색하다 보면 익명 게시판은 온통 좋지 않은 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익명이 보장되는 가상의 공간에서는 자신을 통제하기가 현실에서 보다 더 어렵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억눌렸던 잠재된 욕망이 익명의 공간에서 분출되기 때문입니다. 수사관들의 말을 빌리자면 인터넷 공간에서 온갖 악플을 달고 나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잡고 보면 그리도 착한 사람들이어서 놀란다고 합니다. 이른바 익명의 공간은 해방 공간인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의견이 다수 사람의 견해인 것처럼 나돌면서 무고한 사람을 궁지로 내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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